물과 피로써 오신 분 ㅣ 김지목 ㅣ 2024-05-05

by 김지목 posted May 05, 2024 Views 84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4-05-0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늘뜻펴기 20240505 부활절6

 

물과 피로써 오신 분"

10:44-48 요일5:1-6 98:1-9 15:9-17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종교의 거플을 하나씩 벗겨내고 마침내 더 이상 벗겨낼 수 없는 핵심의 속알이 남았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교 사상의 시작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성령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호흡으로 우리에게 불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장공), 역사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는 하나님나라를 창조하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인이 된 우리의 소명은 사랑의 실천이며, 우리 공동체가 성취해야 할 선교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화두로 살아가야 할 우리의 운명은 요한의 문서에서 극명하게 표방되고 있습니다. 천년의 시간을 아우르며 집필된 성서에서 가장 나중에 기록된 성서, 그래서 가장 진화된 형태로 우리에게 전수된 성서가 바로 요한문서입니다.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서와 요한1서가 강조하고 있는 사랑의 가르침이 오늘 주목하려는 주제입니다.

 

오늘의 요한복음서 본문의 앞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포도나무 비유가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 포도나무이신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우리는 그 나무에서 나온 가지들이라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들이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를 가꾸어 열매 맺기를 바라시는 농부 하나님의 마음, 그 마음을 받아서 가지에 양분을 공급하시는 포도나무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가지인 우리들이 하나의 결로 연결되어 있는데, 농부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가지에 공급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분과 그리고 우리가 맺을 열매가 바로 사랑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오늘 요한복음서의 본문은 사랑의 계명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 이것이 그리스도교를 사랑의 종교로 확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가르침으로서 이 사랑은, 인간관계 차원에서 나누는 사랑의 범주와 차원을 달리 합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농부이신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서 서로사랑해야 할 주체들이기도 하지만 이 사랑의 근원적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 종교적 계명으로서 이 사랑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는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13) 지경으로 승화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나라로 일구는 밑거름이 되는 그런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하나님나라의 푯대가 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의 계명은 인간적인 차원을 넘습니다. 한편 인간적인 차원의 사랑일지라도 그 사랑이 인간적인 욕망으로 수렴하지 않고 그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참된 사랑으로 승화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인 까닭에 인간적인 차원을 넘습니다. 오늘 요한1서 본문 1절에,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낳아주신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 그분이 낳으신 이도 사랑합니다.”고 말합니다. 사랑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단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자기존재의 일부분을 떼어 창조하신 모든 존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중요한 고백은 하나님이 말씀으로(자신의 몸을 떼어)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 이 세상을 완전하게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육신으로 내려오실 정도로 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른바 요한의 성육신(incarnation) 사상입니다. 이처럼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에 나도 사랑으로 동참하는 것! 이것이 사랑으로 하나님과 연결된다는 것의 깊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사랑인 까닭에, 우리는 타자를 향하여 차별과 편견을 그치고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의무이며, 성소수자와 사회적 혐오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존재자체 그대로 사랑받을 권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자신의 닫힌 세계에서 의식을 자가발전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서, 무한하게 열려진 하나님의 창조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랑은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추동하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하시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를 바라시고 성령께서 순간순간마다 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초대를 깨닫지 못하거나 어떤 경우는 애써 외면하면서, 마치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어리석은 종처럼 안주하는 삶을 살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님이 펼쳐두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힘찬 발걸음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인도하는 새로운 세계를 놀라움으로 맞이합니다. 놀라움으로 이전 생각을 돌이켜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의 사도행전 본문에서는 베드로의 놀람'(astonished)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이방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는데,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고, 놀라움 가운데 베드로가 새롭게 결심한 내용입니다.

 

고넬료를 만나 이방인들에게 설교하기 전에 베드로는, 기도 중에 환상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레위기의 율법(11)이 금지하고 있는 음식을 먹으라는 하늘의 음성이 들려오는 환상이었습니다. 율법을 어기는 그 명령을, 베드로는 혐오스럽게 생각했기에 그것을 먹을 수 없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더럽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음성을 재차 듣게 됩니다. 이 말씀은 굳어진 율법을 깨뜨리고 사랑을 택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러한 환상이 있은 후, 베드로는 고넬료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할례 받은 유대인 몇 사람과 함께 그의 집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은 그 이후의 일을 보도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이방인 중에 이방인이었던 로마 군인 고넬료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이 성령을 받아서 방언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다니! 베드로와 함께 갔던 유대인들에게는 깜짝 놀랄 일이었습니다. 환상 중에 율법이 금지한 음식 먹기를 꺼려했던 베드로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아직 유대민족의 부족신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모습을 놀라움으로 직면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지평이 유대주의와 율법주의를 초월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고, 베드로와 유대인은 그 사랑에 놀라며, 회개하고 하나님이 택하신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 곧 이방인을 자기의 공동체로 환대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편협한 생각을 깨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넓은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사랑에서 기인합니다.

 

사랑의 힘은 신앙인에게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사랑을 우리는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을 보내주셨음을 우리는 또한 믿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또 그 사랑을 알게 하신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사랑의 화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그 사랑을 다시 한번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섬김,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까지 베푸신 그 사랑, 부활하심으로 사랑이 결코 소멸되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신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랑을 끝까지 믿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에 남겨진 소명입니다.

 

그런데 요한1서의 본문은 그 사랑의 확신이 흔들리는 공동체에 보내진 서신입니다.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공포, 곧 두려움이었습니다. 극심했던 유대교의 핍박이 초대교회의 사랑의 신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신앙인을 두렵게 하고 공포로 몰아넣는 것은 세상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이 곧 구원의 관문입니다. 공포에서 자유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을 공고히 하여 사랑의 결핍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나타났습니다. 율법을 내세워 백성을 심판으로 위협하는 유대교의 신관이 아닌, 억눌린 자를 자기의 자녀로 삼으시고 구원하시는 사랑의 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립적인 거리가 제거된, 새로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 또한 사랑의 결실이었습니다.

 

요한1서의 본문 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물과 피"로써 오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사랑이 아닌 위협과 심판의 하나님으로 가르치셨다면 아마 예수 그리스도께서 "로써 오셨다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물과 피"로써 오셨다는 것은 십자가 사건의 사실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의 주님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은 세례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 곧 하나님의 예언자로 오신 분임을 의미합니다. “"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고난의 메시야로 오셔서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되신 분임을 뜻합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하셨다는 사실은 예수께서 오클로스 민중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지시합니다. 민중을 사랑하셨기에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셨고 이것이 지배권력에게는 반란죄로 적용되어 십자가 처형을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는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고, 부활의 놀라움 가운데 하나님나라를 향한 새로운 운동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놀라움새로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각성과 약동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 사랑의 놀라움과 새로움을 성만찬 의례로써 기념했습니다. 성만찬 예식에서 떡과 잔을 나눌 때, 떡을 먹음으로써 내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의 화신이 되기를 결단하는 의례였습니다. 또 잔을 나눌 때는,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에 물을 섞어서 물과 피"로 오신 분임을 상징화 하였습니다. “물과 피"인 성만찬의 잔은 사랑의 갱신과 언약의 성취를 상징하였습니다. 잔을 마심으로써 새로운 계명인 사랑을 결단하고, 그리고 사랑으로 완성될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의례로 거행했던 것입니다.

 

물과 피"로써 이 땅에 오신 분, 세상을 사랑하사 성육신으로, 사랑의 화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면서 초대교회는, 놀랍고도 새로운 하나님나라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새로운 계명을 받은 그리스도교는 물과 피"로써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그의 사랑 안에 거하고, 사랑으로 하나님과 연결되고, 사랑으로 새로운 각성과 놀라움을 경험하고, 사랑이 성취될 완전한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향린 공동체는 올해로 창립 71주년을 맞습니다. 다음주가 바로 창립기념주일입니다. 이곳 광화문으로 들어온 지도 이제 1년이 되어갑니다. 이곳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면서 더욱 가열차게 사랑의 선교를 계획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계명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말씀이 우리 공동체에 성육화되고, 그 사랑으로써 우리 서로 연결되고 또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주 창립기념주일 기념 토론회에서는 여기 광화문 새 교회당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선교를 계획할 수 있을지 함께 논의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사랑의 선교를 위해서, 교우 여러분들의 지혜를 나누어주시고 사랑으로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늘 새로워져서 하나님나라의 새 지평을 넓혀가는 향린 공동체, 사랑의 놀라움으로 우리의 맥박이 더욱 고동치고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늘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사랑의 감격으로 서로를, 타자를, 우리 이웃을 환대하십시오. 사랑을 통해 늘 깨닫는 삶, 사랑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삶 살기를,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늘 기억하며 기도하십시오. 사랑의 띠로 우리를 엮으시는 성령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