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살다.
(레위기 19장 13~18절, 로마서 13장 8~10절, 마가복음 12장 28~34절)
김무진 집사 / 백찬양 전도사
[김무진 집사]
[나의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기]
어린이 청소년 청년 그리고 어른. 여러분 반갑습니다! 어린이부 교사 김무진입니다. 오늘 저의 ‘하늘 뜻 펴기’는 앞서 같이 읽은 성서 본문을 짧은 옴니버스 모노드라마로 준비했습니다. 비둘기가 펭귄 마을에 전해준 하나님의 소식.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서 이야기 하실 때도 있지만, 직접 이야기 하실 때도 있었어요.
[장면1] (레위기19:13-18)
(종 1타)
옛날에 옛날에,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 이야기 하셨어요.
하나님 : 모세야, 서로 어울려 살아가려면, 이웃에게 이런 저런 나쁜 것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주다!
모 세 : 아, 눈부셔... 네 알겠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 : 그리고 모세야, 서로 어울려 살아가려면,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
모 세 : 아, 눈부셔... 네 알겠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서로 어울려 살기 위해 ‘이웃에게 이런 저런 나쁜 것들을 하지 말 것’과 특히,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시면서 혹시 모세가 잊어버릴까봐 말끝마다 ‘나는 주다’라고 강조하셨어요.
[장면2] (마가12:28-34)
(종 1타)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웃 사랑에 대하여 직접 말씀하신 후, 시간은 흘러 흘러 ‘모세’와 ‘모세와 더불어 살았던 이웃들’도 모두 죽어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따스한 햇살이 예루살렘 성전을 비추고 예수님은 그 빛을 받으며 성전 뜰을 거닐고 있었고, 그 예수님을 향해 율법학자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어요.
예 수 : (성전뜰을 거닐며) ...
율법학자 : 선생님,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 수 님 : 앗, (깜짝이야...) 흐흠. 그것은... 모든 것을 다해서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의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율법학자 : 오, 선생님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군요!
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위한다는 다른 어떤 계명보다 으뜸입니다!
예 수 님 : 음... 너는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는 않은 것 같구나...
예수님은 정답을 말한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나님 나라에 있다’고 하시지 않고 ‘너는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구나...’라고 하셨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음... 그건 아마도 율법학자는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 실천하지는 않았기 때문일까요...
[장면3](로마서13:8-10)
(종 1타)
예수님께서 율법학자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웃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시고 얼마 지나서 않아서 예수님은 이웃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죽은 이후에 죽었다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이스라엘 여기저기서 생겨났어요.
사람들1 : 죽었다던 예수가 살았데!
사람들2 : 뭐야, 죽었다던 사람이 다시 살았어?
사람들n : 쑤군 쑤군 쑤군...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소식이 널리 퍼지자,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 다시 힘을 얻어 곳곳에서 모이기 시작했어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사울이란 자가 나타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기 시작했어요.
사 울 : 예수 믿는 것들을 모조리 잡아라! 옥에 가둬라!
그러던 어느 날 부활한 예수님이 사울에게 직접 나타났어요.
예수님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아프게 하느냐...
사 울 : 아, 눈부셔... 다..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니,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서 이웃을 아프게 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깊이깊이 슬퍼했어요.
사 울 : 엉 엉 엉....
마침내 사울은 마음을 바꾸어 예수님과 같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위해 이웃 사랑을 전파하고 실천하기 시작했어요. 이참에 이름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꾸었어요.
군 중 : 웅성, 웅성, 웅성...
바 울 : 자, 자, 여러분!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이웃을 괴롭게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이웃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이 말씀을 실천합시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비둘기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웃을 나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하고, 또 실천하다가 마침내 예수님과 같이 죽음을 맞이하였어요.
오랜 옛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 하셨던 ‘이웃을 나의 몸처럼 사랑하라’. 그 말씀은 예수님을 통해서 바울을 통해서 전해졌고, 그 이후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많은 향기로운 이웃들’을 통해서 전해지다가 마침내 어린이 청소년 여러분과 우리들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답니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그리고 어른 여러분. 여러분들과 저도 펭귄마을의 비둘기처럼,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향기로운 이웃처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고 실천하는 ‘향기로운 이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기서 잠깐!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우리의 이웃은 누구일까요? 마음을 따스하게 또는 조금은 뜨겁게 하고, 눈가엔 물기를 머금고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학교와 교회와 세상 그리고 나 자신을 모두 같이 바라봅시다.
지금 여기에 이 시간 공간을 같이 나누며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이웃입니다. 배고프고 소외된 어린이, 청소년, 청년 그리고 어른. 억울하고 분노하는 어린이, 청소년, 청년 그리고 어른. 버려지거나 학대당하거나 어쩔수 없어 자학하는 어린이, 청소년, 청년 그리고 어른. 소수자로 혐오 당하는 어린이, 청소년, 청년 그리고 어른... 우리는 서로 사랑할 많은 이웃들 입니다.
여러분, 같이 바라보고 울어줄 어느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살아가는 것이 비록 힘들지라도 이겨낼 힘이 조금은 생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마음과 눈물을 갖고 서로는 바라보는 것. ‘내 몸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응답하는 그 시작이 아닐까요.
[백찬양 전도사]
안녕하세요. 저는 주일 낮 11시마다 4층 유아부실에서, 이제 막 걷기 시작하고, 이제 막 말하기 시작한 친구들과 그들의 부모님, 선생님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백찬양전도사라고 합니다.
저희 부서 친구들 중에 한 친구는 매일 아침마다 간식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그 조막만한 손으로 유아부 다른 친구들에게 또 부모님, 선생님들에게 자신의 간식을 하나씩 나누어 줍니다. 정작 자기 손에는 자신이 만족할 만큼의 간식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 친구는 자신이 먹던 것까지 꺼내어 저에게 나누어 줍니다. 정말 귀엽지요.
이것이 우리 유아부 친구들이 “사랑”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제가 서두에 저희 부서친구들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교우님들과 함께 나눈 하늘말씀들이 모두 “이웃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함께 나눈 복음서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그의 곁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가난한 사람, 부자, 여자, 아이뿐만 아니라, 율법학자, 종교지도자들도 있었는데요, 예수는 그들과 몇 차례의 논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논쟁들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논쟁사화입니다.
율법학자 중 한사람이 예수께로 나아가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가 활동하던 때의 유대 땅에서는 모두 613가지의 계명이 통용되고 있었는데요, 율법학자들은 그 계명들을 잘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니 그 많은 계명들 중 어떠한 계명이 가장 중요한지를 묻는 것은 그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했고, 궁금했던 이슈였을 것입니다.
예수는 이 율법학자의 질문에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대답합니다.
함께 마가복음의 본문 29절에서 31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여기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하신 말씀은 오늘 함께 봉독한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요. 즉,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미 예수시대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라 명하셨던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나눈 제1성서의 레위기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자신을 믿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라 말씀하신 메시지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는 이들의 ‘삶’이 거룩한 삶이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열하시면서 이웃사랑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실천지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를 마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미 예수시대 이전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명을 통해 각자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도록 요구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자들이라면 응당 가난한 자들의 어려움에 관심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이웃”의 개념입니다.
제1성서에서 나오는 이웃의 개념과 제2성서에서 나오는 이웃의 개념이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제1성서 레위기에서 나오는 이웃은 히브리어로 “레아”입니다. “레아”는 어원적으로 누군가와 사귀어 동료가 됨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유대교에서는 선택된 백성 가운데에서의 동료만을 ‘이웃’이라 칭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이웃에 대한 범주는 이스라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유대인들의 머릿속 이웃의 개념을 해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기준으로 다시 세웁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제 이웃은 “도움을 필요로하는 모든이들”이 되었습니다.
다시 복음서 돌아옵니다.
예수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병행구조로 둡니다. 두 가지가 함께 나란히 가고 있지요. 이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뜻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함이고, 이웃을 사랑함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예수시대 이 후의 사람들에게 상기시킵니다.
함께 읽은 로마서 본문에서 바울은 모든 계명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으로 요약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남을 사랑하는 것만이 율법을 다 이룬 것이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 그러기에 이웃을 사랑했던 예수.
그의 이웃사랑은 이스라엘에 국한되어있던 이웃의 범주를 넓혀,
이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두에게까지 미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의 사랑은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 요청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사랑을 완성시키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부시절 기독교교육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당시 학부를 지내던 저에게 사람들이 꼭 던지던 질문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일반교육과 교회교육이 무엇이 다르냐”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의 저는 질문하는 이들에게 교육의 소재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반교육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교회교육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도 맞겠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일반교육은 ‘앎’에 대해서, 교회교육은 ‘삶’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반교육은 보편적인 ‘앎’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들을 제공하여 개개인의 앎을 증진시키지요.
하지만 교회교육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더불어 이웃의 삶이 더 나은 삶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사랑을 살던 예수의 삶을 닮아 우리의 삶 또한 사랑을 살아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늘은 교회교육주일입니다.
교회교육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삶의 한 길에 우리 교육부서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걸음을 꼭 기억해주시고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 그들이 내딛고 있는 이 한 걸음 한 걸음. 분명 녹록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 걸음들이 사랑을 살았던 예수의 길로 향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의 삶이, 또, 그들을 통해 이웃의 삶이, 더 나은 삶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함께 응원해주시고, 언제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늘 뜻을 마치며 잠시 침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