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본격적인 체험

by 올리버 posted Dec 03, 2024 Views 8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4-11-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정신의 본격적인 체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들 자신의 체험 안에서 찾아보자고.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를 삼가 비쳐 보겠다. 

우리는 자기를 변명하고 싶은데도, 부당한 취급을 받았는데도, 침묵을 지킨 적이 있는가. 

우리는 아무런 보상도 못 받고 남들은 오히려 나의 침묵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도 남을 용서해 준 적이 있는가. 

우리는 순명치 않으면 불쾌한 일을 당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과 그 뜻이라고 부르는 저 신비롭고 소리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분 때문에 순명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아무런 감사도 인정도 받지 못하면서, 내적인 만족마저 못 느끼면서도 희생을 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전적으로 고독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순전히 양심의 내적인 명령에 따라, 아무에게도 말 못할, 아무에게도 이해 못 시킬 결단을, 완전히 혼자서, 아무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음을 알면서, 자신이 영영 책임져야 할 결단인 줄 알면서 내린 적이 있는가. 

우리는 아무런 감격의 물결도 더는 나를 떠받쳐 주지 않고, 자기와 자기 삶의 충동을 더는 하느님과 혼동할 수 없으며, 하느님을 사랑하면 죽을 것만 같은데도 하느님을 사랑한 적이 있는가.  

하느님 사랑이 죽음 같고 절대적 부정 같아 보일 때, 아무도 전혀 들어주지 않는 허무를 향해 부르짖고 있는 듯할 때, 모든 게 못 알아들을 노릇이고 무의미해지는 듯할 때, 그래도 하느님을 사랑한 적이 있는가. 

의무를 행하면 자기 자신을 참으로 거역하고 말살한다는 안타까움을 어찌할 수 없는데도,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기막힌 바보짓을 않고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도 의무를 행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아무런 감사도 이해도 메아리치지 않고, 자기 자신 "몰아적"이라든가 떳떳하다든가 하는 느낌의 갚음마저도 없이 누구에게 친절을 베푼 적이 있는가. 

우리는 자신의 생활 체험 가운데서, 바로 내게 일어난 경험들에서 정신을 찾아보도록 하자. 그와 같은 일이 내게 있었다면 정신을 체험한 것이다. 그것은 곧 영원의 체험이다. 정신은 이 시간적 세계의 일부 이상이라는 경험, 인간의 의의란 이 세상의 의의나 행복으로 다할 수 없다는 경험, 현세적 성공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아무 근거도 없이 그저 믿고 뛰어드는 모험의 경험인 것이다. 

카알 라너 지음/장익 옮김,  <일상>, (분도출판사, 2012. 10. 15) 41-43. 

=============================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라고 말한 이후에 사유/이성/정신은 여러차례 굴곡을 거쳐 왔다.  명석판명한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의심과 사유는 고대 정신이 지니고 있던 존재에의 경이감을 잃어버렸고, 신을 죽인 세대가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 이후에 정신과 이성은 놀랍게도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추락하였다. 얄팍한 정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종교는 두터운 정신, 무게가 나가고 묵직한 정신을 간직해야 한다. 

자기 욕망의 성취를 위해 잔머리로 굴려 대는 정신은 종교가 말하는 정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기 변명이나 늘어놓는 곳에서는 영원의 체험이란 불가능하다. 오히려 죽은 자처럼 자기가 사라질 때, 죽은 자는 말이 없듯이 그저 침묵으로 존재할 때, 그때서야 참다운 정신을 만나게 된다.  바위를 치며 부서지는 포말이 바다를 만나려면 이내 사라져야 하는 것과 같다. 

- 향린 목회 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