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주체 듣는 공동체 ㅣ 이숙진 ㅣ 2024-12-08

by phobbi posted Dec 13, 2024 Views 3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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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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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특강

말하는 주체, 듣는 공동체

 

(삼상 2:1-10, 고전 14:29-40, 1:46-56)

 

대림절 둘째주일

이숙진 박사

 

 

 

그리스도의 평화가 향기로운 이웃인 향린 교우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마니피캇]

 

오늘은 예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엘리사벳의 인사말에 마리아가 마니피캇(Magnificat)을 부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대림절의 노래이며, 약속의 노래입니다.

소시 적에 터무니없는 핑계를 대려는 동무에게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더니~”라는 속담으로 응수하곤 했습니다. 정확한 뜻은 모르면서 상대의 말문을 닫게 하는 방책으로 썼던 것같습니다. 이천 년 전 유대 가부장 사회에서 청년 마리아가 처한 상황을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마리아가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말하는 주체로 우뚝 설수 있었던 것은 정혼자 요셉과 사촌 엘리사벳 등 그녀의 말을 경청한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침묵의 카르텔을 깬 소저너 트루스]

 

복음서는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분으로 고백합니다. 서구의 전통 신학자들은 이 고백을 가지고 예수께서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가 없는 분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여성신학자들은 동정녀 탄생 고백을 가부장주의의 몰락으로 해석해 냅니다. 제가 소개하려는 분은 19세기 흑인노예 여성입니다. 백인 주인이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소저너 트루스라고 개명한 분입니다. 그녀는 뉴욕에서 노예로 태어나 아홉살 때부터 경매시장으로 팔려 다녔습니다. 혹독한 노예살이 중에 복음을 접했고, 노예 폐지 법안을 따라 탈출합니다. 이후 그녀의 경력은 자못 화려합니다. 백인 주인을 고소하여 승소한 첫 여성이 되었고, 남북전쟁 당시 여성 선거권과 노예제 폐지를 호소하는 복음 전도사로 일했습니다. 저 유명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연설을 할 때였습니다. 목격담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그 당시 집회에서 말을 할 용감한 여자들은 거의 없었다. 야유하는 남자들과 냉소적인 청중들에 압도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소저너 트루스가 천천히 일어났다. “말하게 하지마!” 소리가 들렸지만, 침묵을 깨고 말을 시작했다. “저 뒤 서 있는 남자는 그리스도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기에 여자는 남자와 같은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당신의 그리스도는 누구에게 나셨나요? 하느님과 한 여성 사이에 나시지 않았나요. 남자는 예수님의 탄생에 아무것도 기여한 것이 없답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가부장 사회에서는 남자가 생명을 주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서도, “아버지 날 낳으시고라는 명심보감의 구절도 그리 설명합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혼인 전 잉태한 마리아의 존재는 매우 혁명적입니다. 복음서 기자들과 교부들은 동정녀 탄생 설화와 원죄 교리를 통해 여성들과 어머니 마리아를 분리시켰습니다. 하지만 침묵의 카르텔을 깬 여성들은 동정녀 탄생 설화에서 남성의 지배가 끝났다는 것을 읽어냅니다.

소저너 트루스는 말하게 하지마!”라고 종용하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열었습니다. 노예경매시장에서 세 번이나 상품으로 팔려야했던 그녀는 미국의 루터교회와 성공회의 교회력에서 해마다 기리는 여성이 되었고,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해방홀에 흉상이 있는 유일한 흑인여성이 되었습니다.

 

[계집, 예수 만나 말하는 주체가 되다]

 

빛으로 오신 예수를 만나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된 조선의 계집들이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내한 여선교사들은 조선 여성들의 삶을 슬픔과 절망, 힘든 노동과 질병, 그리고 애정 결핍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낮은 계급의 여성들은 30대에 50대처럼 보이며, 이미 40대에는 거의 이가 빠져 있다며 당시 여성의 비참했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기독교로 인해 여성의 위상에 큰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안방에 갇혀 지내던 양반댁 여성들은 교회를 매개로 삶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름조차 없던 하찮은 계집들은 세례를 받기 위해 이름을 가지면서 인간으로 확인받았습니다. 독일출선 선교사 쉐핑은 1921년 선고보고서에 이번 여행에서 만난 여성 500명 중 이름이 있는 사람은 열 명 뿐입니다. 조선 여성들은 돼지할머니’, ‘큰 년’, ‘작은 년등으로 불립니다.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깨우쳐주는 것이 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여성들에게 신앙의 기회를 제공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이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여성들은 기독교를 통해 말하는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벙어리 삼년, 장님 삼년, 귀머거리 삼년이라는 속담이 말해주듯, 한국 여성들에게 강요된 덕목 중 하나는 말없이 따름이었지요. 가부장적 사회일수록 종교는 여성의 말할 권리를 통제했습니다. 유교에서도 부덕의 으뜸은 묵종이며, 디모데전서 212절에서도 여성을 침묵시켜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항기 기독교는 묵종을 강조하던 기존 교리와는 달리, 교회와 미션학교를 통해 여성들에게 말할 권리를 주며 그녀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면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공중기도와 간증은 여성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초기 여신도회였던 조이스회, 이화학당의 이문회에서는 여성교육의 필요성 등의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하였지요. 삼종지도, 여필종부, 칠거지악 등 봉건적 윤리 덕목이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던 당시, 여성연사가 남성들 앞에서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을 벌이는 것은 매우 혁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을 넘어, 자기표현의 수단이자 종속에 대한 거부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여성들이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격려했던 당시 기독교는 여성주체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감수성으로 보면 당시 기독교가 한 실천들은 한계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배우고, 자기 의견을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기독교의 역할은 결코 폄하될 수 없습니다. 문맹과 무지에서 벗어난 여성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을 열었고, 억압적인 상황을 깨닫고 사회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주체가 된 기독교 여성들은 민족운동의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삼일운동 당시, 운동의 주동자로 지목된 여성들 중 기독교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전설적인 전도부인으로 기억되고 있는 주룰루는 삼일운동의 주모자였고, 전도부인 오신도는 애국부인회의 총재로서 민족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이처럼 100여년 전, 믿음의 여성들은 당시의 관습들을 하나씩 허물었고, 그것이 오늘을 만들어 온 것입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192켤레의 주인 잃은 신발 ]

 

지난달 1125일 보신각 앞에는 192켤레의 주인 잃은 신발이 전시되었습니다. 이 신발들은 세계 여성폭력추방의 날을 맞아, 작년 한 해 동안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 피해자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언론에 보도된 것만 해도 최소 1,379명의 여성이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분명 젠더폭력은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더구나 개인의 대응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성차별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전 세계를 경악시킨 ‘N번방월컴투비디오’, 최근 서울대 동문 여성 60여 명을 상대로 한 딥페이크 범죄 등은 성폭력이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연령· 계층· 학력·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컨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억압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사회에서 축적된 성차별주의의 산물인 것이지요.

 

[1027 연합예배의 그림자]

 

이처럼 성차별주의와 그로 인한 폭력은 사회 곳곳에서 넓고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어떠합니까? 지난 1027일 광화문과 여의도에서는 이른바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100대 기도 제목에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관련 항목이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젠더갈등의 원인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기중심성이라는 죄 때문임을 고백하라”,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과 그 사상에 물든 영혼을 분리하게 하라” “페미니즘 사상에 젖어 젠더 갈등과 저출산 비혼주의 확산에 협력한 것을 회개하게 하라등과 같이 페미니즘을 악마화하는 등 노골적으로 여성혐오를 드러냈습니다. 2백만명 규모의 집회를 기획한 주최 측이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을 그 기도문은 한국교회의 현실 인식의 수준과 감각이 얼마나 일천하고 퇴행적인지 스스로 폭로하고 있더군요.

젠더 갈등, 저출산과 비혼은 과연 이기적인 여성의 탓일까요. 과연 한국교회는 남자라는 스펙이 없는 여성에게는 문턱높은 취업시장, 턱없이 낮아지는 일자리의 질,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직장에서 퇴근하여 다시 육아로 출근해야 하는 이중노동, 결혼과 출산으로 직장을 잃고 경력단절을 겪어야 하는 고통의 현실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요.

구직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며 끝내 생존마저 포기하는 청년들이 점점 늘고 있는 현상의 원인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볼 수 없습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려 잠과 쉼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에게 이기적이라거나 의지 박약, 신앙심 부족을 탓하고 죄악시하며 악마화한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토록 절절하게 회개하라고 다그치기보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경청을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가부장적 전통사회의 재갈에 물려 소리를 낼 수 없었던 조선 여성의 희미한 목소리에 경청하고 마침내 그들을 말하는 주체로 세웠던 초기 한국교회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지금 한국 교회가 심각한 성차별주의를 재생산하고 있지 않는지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청년여성들의 현실과 한국교회의 역할 ]

 

역성차별 담론은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해 오히려 남성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고소득을 올리는 일부 고학력 여성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여성 성공사례들은 사회 각 영역에 뿌리내린 성차별 현실을 은폐합니다. 취업 현장에서 만연한 구조적 성차별을 개인의 부족한 능력 탓으로 돌리는 증거가 되어 다수의 일반 여성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하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청년여성들의 삶의 자리는 더욱 열악해졌습니다. 팬데믹 동안 90년대생 여성들의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는 청년여성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반영합니다. 흔히 말하는 꽃다운 나이에 무엇이 이들을 자살의 위기로 몰아넣는 것일까요? 청년 여성의 자살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청년 여성들이 자살을 고려하는 이유로 성과주의와 연결된 가족내 갈등, 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돌봄 감정노동, 노동시장의 문제를 들면서, 이를 관통하는 핵심은 성차별이라고 보았습니다. 좁은 취업 문, 긴 취업 준비 기간, 저임금과 불안정한 취업 상태에서 청년 여성들은 자신이 부족하거나 게으르다고 자책하며, 우울증이나 불안과 같은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가족과 노동 시장에서 겪는 차별, 폭력, 빈곤, 경쟁 풍토는 청년 여성들을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닙니다. 이른바 '4비 세대'(비연애, 비결혼, 비섹스, 비출산)의 출현은 청년 여성들의 불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차별받고 있는 이들에게 숨구멍이 될 틈새를 만들어 주고, 비빌 언덕이 되어 삶의 의지가 되어야 할 교회가 비난과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뒤범벅이 된 기도문으로, 기독 청년들을 교회에서 추방하고 있습니다. 이미 상처입은 이들에게 더 큰 심리적 고통을 주고, 더욱 사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비혼과 비출산을 탓하며, 한국 교회가 그토록 부르짖는 정상가족의 복원은 그 자체로 오늘날 청년들의 현실과는 괴리가 큽니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내세워 전통적인 가족 모델을 재건하는 일보다 우선해야 할 일은 청년들의 절규에 경청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1986년 부천서성고문사건을 기억합니다. 사건발생 한 달 후,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고발자로 우뚝 선 말하는 주체는 성범죄 피해를 수치로 여기는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새 세상을 열었습니다. 그가 강고한 가부장사회의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스러운 그의 증언을 경청한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경청자였던 부천서에 같이 수감된 사람들, 고소 당시엔 9명이었다가 3개월 후 166명으로 늘었던 인권변호인단, 공권력의 횡포와 부도덕성을 들은 시민 청자들의 공분은 세상의 편견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오늘날 미투운동이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공감적으로 듣는 공동체의 형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무리]

 

대림절을 맞아 기독교 영성의 중심이자 크리스천의 삶의 모델인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되새깁니다.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낮은 곳으로 오셨으며, 이러한 성육신에 대한 신앙은 오늘날 우리가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이고,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를 나침반처럼 안내합니다.

2천 년 전 유대문화에서 안식일법과 정결법은 죄를 판단하는 기준이었고,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인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성매매 여성들, 병자들, 세리 등은 죄인으로 낙인찍히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기존의 율법 해석과 규범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이 죄인들과 함께 합니다. 예수는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 간음한 여인, 시로페니키아 여인에게 다가가 차별받던 그들의 삶에 희망을 주었으며,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중심으로 초대했습니다. 예수는 그 누구도 죄인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하며,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의를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차별이 없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신은 <한국교회 2백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에서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훼손된 기독교 정신에 거룩한 분노를 표했을 우리 향기로운 이웃, 향린 교우님, 우리부터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우리 안의 신앙을 성찰합시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길 다짐하는 대림절에 다함께 묵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전국의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펴시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말 못하던 이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말하던 이들은 이제 귀를 열고 듣기를 연습합시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늘 훈련하듯이,

 

우리 모두는 듣는 공동체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