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9.
우리가 더 나은 삶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실제로 만들려 할 때,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힘을 합쳐 만들려 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이룩할 수 있다. 또한 적어도 인류가 지금까지 고통을 겪어온 극도의, 천인공노할, 가슴을 찢는 불의와 해악의 상태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만들고 작용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신의 사랑을 유일하고 참된 종교로서의 인간의 사랑으로 대치해야 한다. 신에 대한 믿음을 인간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대치해야 한다. 그것은 인류의 운명이 인류를 벗어나 있거나 초월해 있는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자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것은 인간의 유일한 악마는 인간, 다시 말하면 조야하고 미신에 사로잡힌, 이기적이고 악한 인간이고 동시에 인간의 유일한 신도 인간 자신이라는 믿음이다.
여러분! 이 말과 함께 이 강의를 마치면서 내가 이 강의에서 제시한, 첫 시간에 말한 나의 과제가 그렇게 어긋나지 않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여러분을 신의 친구에서 인간의 친구로, 신앙인에서 사유하는 자로, 기도하는 자에서 노동자로, 내세의 후보자에서 현세의 학생으로, 기독교인 자신의 고백과 자백에 따르면 ‘반은 동물이고 반은 천사인’ 기독교인에서 인간으로,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려는 과제이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강대석 옮김,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2006. 5. 20.) 4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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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이고 내세적이며, 다소 주술적이며 추상적이었던
서구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한 강력한 현대적 비판의 포문을 연 사람이
바로 포이어바흐다.
큰 틀에서 보자면 이후 나온 맑스, 프로이트, 니체의 그리스도교 비판은
포이어바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동시에 현대 신학은 바로 포이어바흐의 비판을 마음에 새기면서,
다른 한편으로 극복하면서 자신을 구축해 왔다.
얼마나 많은 종교인이 책임 없이 하나님께 많은 것을 미루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종교인이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알고 믿는가!
포이어바흐의 말대로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라도
“신의 친구에서 인간의 친구로, 신앙인에서 사유하는 자로,
기도하는 자에서 노동자로, 내세의 후보자에서 현세의 학생으로” 살아봐야 한다.
이웃과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 없이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며,
사유 없는 신앙은 맹목적 광신으로 흐른다.
노동하지 않는 기도는 열매가 없고,
현세의 학생이길 거부하는 자의 내세는 결국 지옥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신뢰와 그를 따르는 삶 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인간 친구를 통해 신의 친구가 될 수 있고,
사유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으며,
기도하는 노동자이자, 노동으로 기도하는 자일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기억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슴에 품고,
노력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 향린 목회 4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