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0.
조계종의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은 “공부는 꿈속에서까지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 노숙한 선승의 일갈은 영감의 배태에 대한 과학의 이치를 소박하게 꿰뚫고 있다. 밤은 근실한 낮에 호의적이고, 무의식은 정성을 다하는 의식에 주목하는 법이다. 잠시 이 모든 경험을 두루뭉술하게 정리해 보자면, 영감이 잉태되는 과정은 일종의 무의식적 숙성인 셈인데, 여기서 극히 흥미롭고 중요한 지점은 이 무의식이 생산적으로 활성화하려면 반드시 의식의 성실한 시행착오가 선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범박하게 풀어 보자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우리네 속담도 이 같은 이치의 일단을 담고 있다. 지성이 의식적 모색이라면 감천은 무의식적 응답인 셈이고 그 사이, 곧 지성의 모색을 다한 이후에 그 노력 자체를 모른 체하는 휴식과 숙성의 시기를 영감의 배태기로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격언으로 ‘달빛과 더불어 옥수수도 익는다’는 게 있다. ~~ ‘김치는 손맛’이라고들 하고, 평생 김치를 애용하는 우리 모두는 단박 그 말의 뜻을 알아챈다. 그러나 정작 김치의 맛은 바로 그 손이 김치를 잊고 있는 동안에 숙성한다. 다시 말하면, 김치를 담근 그 손길들이 자신의 노고를 알면서 모른 체하는 사이, 김치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익명의 무의식(=김치 항아리) 속에서 익어 가는 것이다.
김영민 지음, <김영민의 공부론>(샘터, 2013. 11. 30.)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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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알면서 모른 체하기’이며,
‘활을 당기되 쏘지 않고(引而不發) 버티면서 그 온축의 숙성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서문으로 내 맘을 일거에 사로잡은 책의 한 구절이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뜻하지 않고도 얻고, 애쓰지 않아도 들어맞는(不思而得, 不勉而中) 경지는
사실 정성을 다하는 의식이 성실한 시행착오를 견디는 일상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늘을 울리려면 사람의 지극한 정성이 깃들어야 하는 법!
천박한 신앙인들은 믿음을 핑계 삼아 너무 쉽게 은총을 구한다.
하나님을 너무 자주 부르지 말자.
하나님을 놓아주고, 근기 있게 오늘을 살아내 보자.
성급하게 시작하고, 무성의하게 그만두는 일일랑은 하지 말고,
긴 안목 속에서 순간의 시간을 소중하게 받들자.
- 향린 목회 4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