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by phobbi posted Dec 25, 2024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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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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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25.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5. 30)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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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어느 날엔가

책방에 가서 평소에 잘 읽지 않았던

시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대충 훑어보다가

갑자기 내 눈을 사로잡은 시 한 편, “엄마 걱정

 

이 시를 읽는 순간 나는 울컥했고,

불현듯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상황이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기형도 시인은 외동이고, 나는 두 명의 동생이 있지만,

채소를 팔러 시장에 간 엄마를 해가 지도록 기다리며

찬밥처럼 방에 담겨 외로움에 지쳐 잠들었던 숱한 나날들이 불쑥 떠올라

나도 모르게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성탄절!

우리 주님이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는 모든 이들 곁으로 오시면 좋겠다.

 

 

 

 

- 향린 목회 5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