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5.
사람의 얼굴은 그것 자체가 하나의 표현(expression)이다. ~~ 그것은 ‘속에 들어 있는 것’이 표면에 자연히 드러나면서 남기는 형적(形迹)일 것이다. ~~ 무릇 얼굴이란 번연히 자신의 이력을 드러낸다. 슈바이처는 “마흔이 되면 누구나 자기 자신의 삶이 준 얼굴을 갖고 있고, 예순의 나이가 되면 스스로가 성취해 낸 가치만큼의 얼굴을 지니게 된다(Mit vierzig Jahren hat jeder das Gesicht, das ihm das Leben gegeben hat, und mit sechzig das Gesicht, das er verdient)”고도 했는데, 그 말이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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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도 ‘얼굴은 영혼이 명백히 표현되는 곳’이며, 특히 인간 영혼의 내적 통일성이 얼굴의 형상을 통해 드러난다고 했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의 정신이 드러나 있다. 무릇 정신은 자신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민,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글항아리, 2024. 9. 13.)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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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함석헌 선생은 ‘얼굴’이란 시를 쓴다.
그는 말한다.
“이 세상 뭘 하러 왔던고?
얼굴 하나 보러 왔지.
참 얼굴 하나 보고 가잠이
우리 삶이지.”(89)
그는 참 얼굴을 찾아 헤맨다.
“참 고운 얼굴이 없어?
하나도 없단 말이냐?
그 얼굴만 보면 세상을 잊고,
그 얼굴만 보면 나를 잊고,
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
밥을 먹었는지 아니 먹었는지 모르는 얼굴,
그 얼굴만 대하면 키가 하늘에 닿는 듯하고,
그 얼굴만 대하면 가슴이 큰 바다 같애,
남을 위해 주고 싶은 맘 파도처럼 일어나고,
가슴이 그저 시원한,
그저 마주 앉아 바라만 보고 싶은,
참 아름다운 얼굴은 없단 말이냐?
저 많은 얼굴들 저리 많은데”(88)
“아, 내 마음 급해!
내 가슴 타!
내 눈 흐리고
내 숨 헐떡여 끊어지려 하네!
그 얼굴 하나
그 산 얼굴 하나 보고 싶은 마음에.”(89)
“땅 위에 산 얼굴 찾아
헤매이던 내 눈,
피곤에 흐리어 푸른 하늘 바라고,
그 님의 그 얼굴 내 맘에 그리면
그리다 그리다 못해
내 눈에 눈물 어리는 때면
그 영광의 얼굴, 그 거룩하게 산 얼굴
내 눈물 속에 영롱하게 뵈고,
그 광채 내 얼굴 비쳐
내 얼굴 타올라 빛나는 듯하고,
내 마음 시원하고,
이 좁은 세상 넓어지고 높아지며,
저 멀리 저 무한한
저 영원한 가 쪽에 가슴 벌려 서고
그 안의 모든 형상들 모든 얼굴들,
그전에 더럽던 그 모든 얼굴들,
밤 하늘에 별처럼,
달빛에 보는 들처럼,
그 풀잎새, 그 가지, 그 이슬,
또 저녁 바다 넘는 햇빛에 바라는 섬처럼,
그 바위, 그 모래, 그 조개껍질, 그 부서진 배 조각,
한 빛에 들어 그대로 다 아름답듯이
그대로 다 빛나 좋으네!
그 얼굴 그리워, 아아,
그 님의 그 얼굴 늘 바라고 늘 그리며
눈물로 사라지는 슬픔에 씻긴 맑은 눈으로,
눈물에 사라지는 세상 얼굴들 바라보고,
늘 기쁨에 늘 찬송에 늘 사랑에 살고 싶으네.
늘 그리움에, 늘 영광에, 살고 싶으네.
이 바닷가 걷고 싶으네.”(91-92)
[함석헌, 함석헌 전집 6. <시집 수평선 너머>,(한길사, 1988. 2. 20. 제4판), 87-92.]
인생을 살면서,
참 얼굴 하나 보고 가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 향린 목회 6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