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1. 28.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능가하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견고한 본질을 붙잡고 씨름한다. 가장 위대한 승자가 패배자로 등장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비밀 – 말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 이 항상 말로 표현되지 못한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이 예술의 물질적 경계에 굴복하는 법은 결코 없다. 우리는 자구(字句) 하나하나에 열광한다. 꽃 피운 나무, 영웅이나 여인, 새벽 별을 보고 <아!> 감탄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 이상의 것을 담아낼 수 없다. 이 <아!>를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어, 우리 자신의 부패로부터 구하고 싶어, 분석하고 사상과 예술로 바꾸려고 애써 보지만, 텅 빈 허공과 공상으로 가득한 채색된 단어들의 놋그릇 속에서 그것은 얼마나 싸구려로 변해 버리는지!
어느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수북이 쌓인 종이들 앞에 구부리고 앉아 쓰고, 쓰고, 또 쓰고 ……. 나는 마치 산을 오르기라도 하듯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 구원하려고, 구원받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단어들을 정복하기 위해 그것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단어들이 마치 암말처럼 저항하면서 내 주위로 거칠게 뛰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몸을 굽히고 있을 때 문득 내 정수리를 관통하는 어떤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들었다. 거기, 내 앞에, 검은 턱수염을 바닥까지 늘어뜨린 난쟁이가 한 명 서 있었다. 그는 무거운 머리를 천천히 흔들면서 경멸의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린 채, 좀 전의 그 굴레로 다시 목을 떨어뜨리고 글쓰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그 시선은 계속 정수를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전율하면서 다시 한번 눈을 들었고, 난쟁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향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유감과 경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내 생애 처음으로, 배 속 깊이에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몰두했던 이 종이들, 책들, 잉크에 대한 분노 – 아름다운 틀 속에 나의 영혼을 가두려 하는 나 자신의 신성하지 못한 몸부림에 대한 분노였다.
오장 육부에서 올라오는 메스꺼움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내 속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솟아올랐다. 마치 그 난쟁이가 아직도 내 앞에 서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니코스 카잔타키스/송은경 옮김, <지중해 기행>(열린책들, 2008. 3. 30.)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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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모든 예술가가 이런 고통을 겪을 것이다.
가장 위대한 성취 속에서도 미완성의 아쉬움이 남기에
승리감보다도 패배감에 휩싸이기 마련이고,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유감과 경멸의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숨을 헐떡거리고, 발버둥 치면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내내 싸구려처럼 느껴지는 단어와 문장들!
때로 메스꺼움과 울화마저 치밀어 오른다.
‘참’을 참되게 말하고자 한다면,
모든 설교자 또한 이런 고뇌를 겪지 않을 수 없다.
평생 씌워진 멍에와 굴레이다.
- 향린 목회 8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