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2. 07.
그는 계산만 합니다. 계산은 언제나 그렇듯이 유용성과 효율성만을 따지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아이히만은 상부의 명령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효과적 수단만을 고민합니다. 이 고민은 생각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무사유는 단순한 ‘생각 없음’이 아닙니다. 무사유는 정신의 소극적인 활동도 아니고, 의식의 무기력증도 아닙니다. 무사유는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입니다. 이 적극적인 무시의 활동을 하는 것이 바로 도구적 이성입니다. 한마디로 이익계산에 혈안이 된 도구적 이성의 활동이 무사유입니다. 이 맥락에서 아이히만은 명령의 정당성을 따지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익 계산은 능숙하게 수행한 악마, 가장 악랄한 악마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 악마는 한 사람의 속성이 아니라 사유하지 않고 계산만 하는 사람의 활동입니다.
악마가 되지 않으려면 이성을 비판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성을 비판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수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악마가 되지 않으려면 비판적 이성이 왕성하게 활동하도록 훈련을 해야 합니다. 비판적 이성은 부정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 헤겔은 모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부정하라고 합니다. 이를 철학에서는 ‘규정적 부정(Die bestimmte Negation)’이라고 합니다. ‘저 사람은 나쁜 놈이야!’가 아니라 ‘저 사람의 무엇이 나쁜 행동이야!’라고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
부정적인 것을 제대로 부정하려면 끈질긴 노력이 필요합니다. ~~
비판적 이성은 목적 자체의 정당성을 묻는 활동입니다. 이 과정에서 비판적 이성은 자기 자신의 생각마저도 비판하고 부정하는 데까지 활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판적 이성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 자기 부정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익계산에 몰두하려는 자신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박구용 지음, <빛의 혁명과 반혁명 사이>(시월, 2025. 1. 12.) 53-56.
================================
어느 날 공자 제자인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공 선생이 대답하시길 “별로다.” “그럼, 마을 사람 모두가 싫어하면 어떻습니까?”
“그것도 별로지. 마을 사람 중 착한 사람이 좋아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만 못하지.”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論語』 「子路」 24.)
이 이야기에도 비판적 사유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은 진짜 좋은 것이 아니고,
모두 안 좋다고 치부하는 것도 안 된다.
이익계산에만 몰두하면서 정당한 가치와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 또한 큰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가 쉽게 빠져드는 가장 큰 문제는
가치를 무시하고 이익에만 몰두하는 사람들,
도구적 이성만을 사용하는 이들이 증가하는 것이다.
자기 부정의 정신과 지속적인 비판적 사유가 축소되면서
정당성을 묻지 않는 사회는 무법천지가 되고,
구성원들 모두가 악마의 노리개가 되고 만다.
- 향린 목회 9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