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2. 09.
집단주의 문화가 갈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때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점 중 하나가 의사소통 방식이다.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의 연구에 의하면 집단주의 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할 때 고맥락(high-context) 의사소통 방식에 의존한다. 이것은 개인주의 문화의 저맥락(low-context) 의사소통 방식과 대조된다. 저맥락 의사소통 방식은 전달하는 메시지에 숨겨진 맥락이 거의 없이 모든 정보와 사실이 담겨지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 ‘좋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정말 ‘좋다’는 의미인 것이다. 상대는 그 정보와 사실을 그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면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맥락 의사소통 방식에서는 전달하는 메시지에 모든 정보와 사실이 담기지 않는다. 때로는 최소한의 정보와 사실만 담기고 메시지의 이면에 여러 가지 상황과 맥락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메시지는 이면의 상황과 맥락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 역할을 할 뿐이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 ‘싫다’고 얘기할 때 거기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 무시, 존경, 두려움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는 것이 ‘좋다’는 대답이 아니라 그냥 ‘당신의 생각을 이해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때문에 고맥락 의사소통에 따라 메시지를 전달받는 사람은 숨겨진 맥락들을 유추해야 한다. 때로는 밖으로 표현된 것보다 뒤에 숨겨진 상황이나 맥락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주진 지음, <갈등은 기회다>(개마고원, 2016. 3. 28),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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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맥락 의사소통 방식에 익숙한 사회다.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저맥락 의사소통 방식을 선호하고,
기존 관계의 성격과 질에 따라 의사소통의 양식이 다를 수 있지만,
대개는 고맥락 의사소통 방식을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저맥락 의사소통 방식을 선호는 사람들이
다소 특이하거나 무례하거나 배려가 없거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또 저맥락 의사소통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고맥락 의사소통에 당황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다수가 고맥락 의사소통을 사용하기에
의미의 다중성이나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그래서 의사소통 훈련이 요청된다.
자신이 뜻한 바를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말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고,
상대의 말 속에 담긴 뜻을 주의 깊게 듣고,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되물어서 오해를 줄일 필요가 있다.
오늘도 야고보서의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말을 부리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말의 온 몸을 끌고 다닙니다. 보십시오. 배도 그렇습니다. 배가 아무리 커도, 또 거센 바람에 밀려도, 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여,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 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에 타버립니다. 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야고보서 3:2-10)
- 향린 목회 9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