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둔한 것이 범을 잡는다

by phobbi posted Feb 17, 2025 Views 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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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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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2. 17.

 

왜 그런데 민중은 우매하다고 하나? 그것은 무력하고 무분별하고 무사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왜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그래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다시 보면 민심만큼 재빨리 분명한 방향에서 통일되는 것도 없다. 저들은 알알이 흩어진 모래알 같으나 뜻밖에도 서로 깊이 연결돼 있다. 가령 민요 같은 것이 순식간에 전국에 퍼지는 예가 그렇다. ~~

 

저들은 어떤 지적 도구나 또는 어떤 체계적 이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저들은 마치 특수한 영감을 지닌 듯이, 이 역사의 자취를 재빨리 포착하는 안테나처럼 예민하다. 그렇다면 이 예민함은 어디서 올까?

 

어떻게 보면 저들의 무사상, 저들의 무전제가 바로 저들을 예민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상이 인위적인 것이라면 저들은 사상화 이전의 리얼리티를 순수하게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뜻에서 민심은 바로 천심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계몽시대에는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일면만을 나타낸 말이다. 오히려 너무 알기 때문에 오히려 무력하게 되는 것도 현실이다. 대중은 무식하다. 그러므로 우매한 일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무식함이 저들의 중추신경이 건전한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둔한 것이 범을 잡는다는 격언처럼 우둔한 저들은 합리적 계산법을 비웃는 기적 같은 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안병무, <역사와 민중>(안병무 전집 6, 한길사, 1993. 1. 5.)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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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무력하게 만드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앎이 삶과 괴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모름으로 가득 차 있고,

산다는 것은 바로 이 모름을 모르는 채로도 간직하며 견뎌내는 것인데,

앎은 자꾸만 삶에서 모름을 밀어내려고 한다.

앎에는 반드시 모름이 같이 따라오는 법인데,

앎만을 소중히 여기고, 모름을 품지 못하기에,

앎이 많을수록 삶에서 멀어지고,

그래서 삶의 모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순간,

안다고 자랑하던 이들은 순식간에 무력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비겁해진다. 그동안 자신이 주장하던 그 진리를 스스로 배신한다.

그래서 배운 자들이 늘 명심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이고, 아무리 알아도 언제나 모름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배운 사람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는 것은 몸부림이다.

머리만 굴려서는 온전치 못하다.

머리는 몸을 대변해야지,

자기가 몸을 이끌려고 해서는 안 된다.

머리는 몸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몸은 세상 온갖 것과 연결되어 있다.

머리는 머리로만 존재할 수 없으며,

몸에 속한 존재라는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향린 목회 10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