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2. 24.
해방의 아이러니는 우선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해방(Emancipation)”이 우리 민족에게 “독립(Independence)”을 선물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해방 그 자체가 불행하게도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수행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압제의 수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훌륭한 지사들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정말 용감히 싸웠고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해방이 이러한 독립지사들의 역량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소위 “꼴통”(=반공에 쩔어 변화를 모르는 외골수의 인간들의 총칭)들의 발악이나 담론이나 권세나 저주는 존재할 길이 없을 것이다. 독립지사들의 주체적 역량에 의하여 역사는 정의롭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셋째로, 해방은 갑작스러운 “권력의 공백”을 초래하였고, 이 공백을 메워가는 세력들의 새로운 전쟁을 야기시켰다.
넷째로, 해방은 이념적인 주체가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 이념의 갈등과 혼란을 선물했다. 따라서 이 다양한 이념의 갈등은 결국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 결국 어떤 나라를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젼의 대결을 야기시켰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지적 세계는 인류사의 모든 이념의 각축장이 되고 만 것이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모여든 모든 지사들의 갈등적 비젼이 벌이는 “오케이목장의 결투”였다.
도올 김용옥 지음, <우린 너무 몰랐다.>(통나무, 2019. 01. 18.),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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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군에 의해 식민지가 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세 종류의 인간이 나타난다.
첫째는 점령군에게 빌붙어 자기 이익을 달성하며 나라를 해롭게 하는 부역자이다.
둘째는 점령군에 맞서 싸우고 다시 나라를 되찾으려는 저항하는 이들, 레지스탕스다.
셋째는 점령군의 횡포에 겁에 질려 침묵하는 다수의 군중이다.
일본이 우리 땅을 침탈했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우리 현대사의 모든 비극은 제대로 된 일제 청산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일제에서 벗어났으나 해방이 모든 민족에게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일제에 빌붙어 권력을 누리던 이들에게는 청천벽력의 소식이었을 테니까.
게다가 도올 선생님 말씀대로 해방의 아이러니는
우리 사회를 극심한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몽양 여운형만이 해방 전(1944년 8월 10일)에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하고,
“주권재민의 민주공화국”의 비젼으로 해방의 공백을 메꿀 사람이었으나,
그는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이후 이 나라는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괴뢰의 힘 대결의 장이 되었고,
결국 끔찍한 한국 전쟁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에서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힌 친일매국의 그림자를 보았다.
탄핵 인용과 파면 정국은 과연 우리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우리 모두는 어떻게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된 사회 개혁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촛불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응원봉의 행진은 어떤 방식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 향린 목회 11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