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2. 28.
한국불교사는 통불교적 성격이 강하며 종파적 관념에 사로잡힘이 없이 불타의 가르침의 원의를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특히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선풍(禪風)을 모든 불교운동의 근원에 깔아 번쇄한 언어를 초월한 담박한 시경(詩境)을 지켰다. 조선왕조의 시기에 “선교양종(禪敎兩宗)”이라는 말이 쓰이지만 조선불교에 선종과 교종의 엄격한 구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 없이 교가 있을 수 없고, 교 없이 선이 있을 수 없다. 불립문자라 하여 선이 교를 부정하는 듯하지만, 교의 훈도가 없는 선은 정당한 선의 자격을 지니지 못한다. 일본의 불교사찰이 다양한 종파의 특색을 표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조선의 사찰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고, 담박하고 언어나 교리의 폭력이 없이 선(禪)적인 순수성을 보존하고 있다. 더구나 조선왕조시기를 통하여 승려가 도성출입을 못하는 등, 극도의 탄압과 비하 속에 기름끼와 허세를 다 날려버린 조선의 불교는 그 나름대로 아름다운,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김용옥 지음, <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통나무, 2024. 10. 30.),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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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통으로 아우르면서
세계 기독교에 도움이 될 만한 K-기독교가 될 수 있을까?
지금 한국 개신교는 하나님의 키 위에서 까불러져서 알곡과 쭉정이가 드러나는 중이다.
한쪽에서는 시련이라 부르지만,
더 큰 틀에서는 순수한 예수 정신으로 되돌아갈 것을 요청받는 것이다.
조선불교가 외부의 탄압으로 정화가 되었다면,
한국 개신교는 자체 내부의 왜곡된 신앙 때문에 오히려 진통을 겪고 있는데,
내우(內憂)가 되었든 외환(外患)이 되었든,
올바른 예수 정신에 서는 일이 중요하다.
- 향린 목회 11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