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언어의 끌리는 맛

by phobbi posted Apr 04, 2025 Views 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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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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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04.

 

시대가 바뀌면서 언어 구속과 제한은 점차 완화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화다운 대화가 더 많아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가족 간에도, 직장에서도, 지시와 잔소리 또는 말대꾸 같은 위계적인 모습보다 풍요로운 대화가 오가야 한다.

 

정치인과 공직자 사이에도 대화가 많아야 한다. 한국 미디어에서 자주 보이는 의사소통 장면은 감정적일 때가 많다. 말투를 문제 삼고, 말꼬투리를 잡고, 서로 지적질을 하곤 한다. 그러다 결국에는 마이크가 터질 듯이 고성을 주고받은 후 본격적인 몸싸움 단계로 진입한다. 당연히 대화의 핵심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비생산적인 광경이 아닌,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미래 세대에 휴머노이드가 등장하고 인공지능과 소통이 늘더라도, 기술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감성과 공감의 영역이다. 아무리 스크린 문해력, 디지털 문해력이 뛰어나도 다른 사람과 공감하며 대화하는 능력이 없다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어렵다. 이때 대화에는 말뿐 아니라 행동, 표정, 몸짓 등 모든 게 포함된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통해 배울 수 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inspire), 동기를 부여하는(motivate) 진심이 담긴 대화는 인공지능과 나눌 수 없다.

 

그럼 인간 언어의 끌리는 맛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단서는 인간의 목소리에 있다. 컴퓨터로 제작한 완벽한 인간의 음성은 소위 비유창성(disfluency) 표현이라고 하는 노이즈가 제거된 깨끗한 음성이다. “”, “같은 간투사도 없다. 촘스키는 이러한 비유창성 표현을 가리켜 단순히 인간의 사소한 말하기 실수라고 했다. 하지만 간투사 같은 불완전성과 불규칙성에 바로 인간 언어의 매력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리나 알렉사 같은 인공지능 목소리는 실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한 번에 완벽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말하고 고치고 다시 말하기를 늘 반복한다. 기억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잊어버리기도 하고, 말하다가 이전 내용으로 되돌아가 거듭 말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불완전한 표현, 음성이나 몸짓이 소통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슬픈 일이 닥쳤을 때, 놀랄 만한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 떠올려보자. 이러한 인간적인 소리와 몸짓 없이는 진심이 담긴 감정과 메시지가 전달되기 어려울 것이다.

 

조지은 지음, <미래언어가 온다>(미래의 창, 2024. 7. 15.), 2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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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사람보다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높다.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은 한 개인이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에 이미 이르렀다.

다만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리 몸으로 배우는 것에는 아직까지 여전히 미숙한데,

이 부분 또한 로봇공학의 발달로 언젠가는 인간처럼 감각하고 인식하고 이해하여 행동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

 

저자는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inspire), 동기를 부여하는(motivate) 진심이 담긴 대화는 인공지능과 나눌 수 없다.”고 하지만 ChatGPT와 대화를 나눠도 영감을 받고, 동기도 부여되는 경험을 이미 하고 있다. 오히려 저자가 말한 것 중에 재밌는 것은 바로 인간 언어의 끌리는 맛이다.

 

저자는 인간 언어의 끌리는 맛이 인간의 목소리와 비유창성, 사소한 말하기 실수에 있다고 한다. 완벽함이 아니라 틀리는 것, 연약하고 취약한 특성에 있다는 것이다. 감정이나 공감의 전달은 바로 논리의 완전성이나 노이즈 없는 깔끔함에 있지 않고, 오히려 더듬고 늘어지고, 때로 흥분하다가 차분해지기도 하는 것들에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인공지능의 진정한 발달은 이세돌을 완벽하게 이기는 알파고의 모습이 아니라,

인공지능도 바둑을 두다가 포기하면서 안 하겠다고 판을 뒤집어버리는 일에 있지 않을까 라고 혼자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인공지능을 만날 날이 과연 언제 올까?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 - Alexander Pope(1688~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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