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스팸화

by phobbi posted Apr 17, 2025 Views 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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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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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7.

 

사회의 긍정화 과정은 언어까지 휩쓸어간다. 그 속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언어폭력이 생겨난다. 중상, 비방, 비하, 모욕, 물건 취급에 이르는 폭력의 언어는 부정성의 폭력이다. 폭력의 언어는 타자를 부정한다. 그것은 친구와 적의 면역학적 도식을 따른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언어폭력은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이다. 그것은 타자를 겨냥한 공격이 아니다. 새로운 언어 폭력은 동일한 것의 무더기에서, 긍정적인 것의 대량화에서 태어난다.

 

오늘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과잉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스팸화를 초래한다. 여기서 생겨나는 것은 정보 가치도 없고 소통적이지도 않은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무더기뿐이다. 스팸화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점점 더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좁은 의미의 스팸 메시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이크로블로깅과 같은 활동으로 발생하는 거대한 커뮤니케이션의 더미 역시 커뮤니케이션의 스팸화에 기여한다. 라틴어 표현 코무니카레(communicare)’는 함께 뭔가를 하다, 합하다, 주다, 공유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커뮤니케이션은 공동체를 수립하는 행위다. 그러나 일정한 한도를 넘어서면 커뮤니케이션도 더 이상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를 누적해갈 뿐이다. 정보는 형식을 부여하기에(in Form) 정보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정보도 어느 한도를 넘으면 형식을 주는 것(in-formativ)이 아니라 형식 파괴적(de-formativ)로 작용한다. 정보는 형식을 망가뜨린다(auβer Form).

 

언어의 스팸화는 자아의 비대화와 결부된 현상이다. 자아의 비대화는 공허한 커뮤니케이션을 낳는다.

 

한병철 지음/김태환 옮김, <폭력의 위상학>(김영사, 2020. 8. 21.), 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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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말을 많이 하는 직업군에 속한다.

설교와 강의는 기본이고, 다양한 이들과 많은 대화도 해야 한다.

여기저기에서 요청하는 글을 써야 할 때도 많다.

 

대개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부정의 언어보다, 긍정의 언어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긍정의 언어도 너무 자주 쓰면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 되고 만다.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고,

변화를 가져오는 어떤 실마리도 없이,

그냥 뻔하디뻔한 상투어들이 반복적으로 나올 때

그것은 그냥 쓰레기 더미일 뿐이다.

 

언어의 스팸화가 자아의 비대화와 결부된 현상이라는 철학자의 지적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입을 닫고 귀를 여는 연습을 강도 높게 해야 하리라.

 

그리고 듣는 귀 없이 제 말만 하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외로우면서도 타자를 수용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람 중에서 종종 끊임없이 제 말만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는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영혼을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 향린 목회 16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