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내 공생설(endosymbiotic theory)

by phobbi posted Apr 27, 2025 Views 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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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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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27.

 

일반적으로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 진화가 이루어질 때 두 가지 핵심 변화가 수반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중 첫 번째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세포핵의 등장이다. 이것은 고세균 세포에서 세포막이 함입되면서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세포막의 일부가 막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유전자를 운반하는 염색체 주위를 둘러싸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포핵은 세포의 중앙통제실이 되었다.

 

핵의 등장은 진핵생물에게 그 이름을 부여한, 진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진핵생물이 새로운 생명 형태로서 이 세상에 출현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야 했다. 바로 결혼으로, LUCA(모든 생물의 가장 최근 공통 조상,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of all of life, 이것은 세포나 세포형일 수 있고, 초기 세포 집합체일 수도 있다.)의 자손들 사이에서 일종의 세포적 근친상간이 일어나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강제 결혼이었다. 고세균 세포가 박테리아 세포를 잡아먹는(정확히 말하면 삼키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유기체가 다른 유기체를 잡아먹는 일은 자연계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예컨대 우리도 식물과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이 경우가 특별했던 까닭은 잡아먹힌 박테리아 세포가 고세균에게 소화되는 것을 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마치 장내 기생충이 숙주의 위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고세균에게 잡아먹힌 박테리아는 처음에는 기생 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생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박테리아 세포는 고세균 세포에게 유용한 자산이 되었고, 두 세포는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 살아갔다. 이 세포가 바로 최초의 진핵생물로, ‘모든 진핵생물의 가장 최근 공통조상(Last Eukaryotic Common Ancestor)’ LECA.

 

박테리아와 공생을 시작한 것이 고세균에는 어떤 이득이 되었을까? ~~ 고세균 세포는 박테리아를 삼키기 이전에 공기, 즉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먹고 살았다. 하지만 박테리아가 고세균 안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에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고세균이 삼킨 박테리아는 세포 안에서 막으로 둘러싸인 세포소기관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 진핵세포의 미토콘드리아는 이러한 박테리아 소기관으로부터 기원했으며, 미토콘드리아가 맡은 일은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세포의 모든 기능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에너지 생성에 특화된 기관을 가지는 것은 세포에게 큰 이득이 되었다.

 

~~

 

세포소기관 중 하나인 핵은 유전물질의 대부분을 보관하는 역할을 하며, 또 다른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공장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세포들은 세포 전체에 화학 물질을 분배하기 위한 기관인 세포골격 수송체계도 가진다. 원생생물계를 일군 단세포 생물들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복잡한 다세포 생물의 조상이다. 이런 복잡한 유기체들은 신체가 진핵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식물, 균류, 동물도 모두 통틀어 진핵생물이다.

 

조지프 르두 지음/박선진 옮김,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바다출판사, 2023. 1. 10), 10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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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진핵생물이고,

이런 다세포 생물의 조상은 원생생물계를 이룬 단세포 생물인데,

이 단세포 생물 자체가 원시 고세균 원핵세포와 박테리아 세포의 공생 때문에 가능했다.

즉 모든 생명체는 세포 내 공생’(endosymbiotic theory)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통찰과 의미를 우리에게 제공하는데,

즉 생명은 나와 다른 존재, 즉 타자와의 공생 속에서만 지속가능하다는 것이고,

공생관계가 되기 위해 자기의 일부를 포기하면서 상호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자기 변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박테리아가 자기의 유전자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미토콘드리아가 된 것처럼).

 

먼 옛날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새번역 성경 이사야서 116-7)”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 또한 공생이며,

이것은 반드시 강자의 자기 포기 또는 질적 변화가 요청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향린 목회 17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