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남회원들에게 보내는 희남회장 개인서신 제2호

by 흐르는물처럼 posted Jan 19, 2019 Views 197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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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鑑於水 鑑於人(무감어수 감어인)
2019년 1월 18일(금) 제2호

 

 

‘無鑑於水 鑑於人(무감어수 감어인)’은 묵자에 나오는 말로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기를 비추어 보라는 말입니다.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자기경계인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라는 반성이기도 합니다.
 
(우편번호 : 02704) 서울시 성북구 보국문로35길 49-12, 희남신도회장 김종일
E-mail : jaju58@hanmail.net, 전화 : 010-9972-1110

 

 

1. 고민 한자락

 

2019년 희남신도회장으로 선출된 김종일입니다.
올해에도 희남회원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2번째 서신을 보냅니다.

 

최근에 원주에 사시는 최병규 집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짧은 통화만으로도 서로의 근황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소통과 공감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짧은 통화나 서신으로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희남 월례회는 매달 셋째 주 예배가 끝난 이후에 목사님 방에서 열립니다. 모든 신도회가 매달 둘째 주에 신도회 모임을 갖지만 희남은 매달 셋째 주에 열립니다. 교회 회의공간이 여의치 않아서 그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는 공동의회가 열리기 때문에 1월 희남 월례회는 마지막 주에 개최됩니다. 희남 회원들께서는 이점을 양지하시고 마지막 주에 잊지 마시고 꼭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1월 초 신임임원들이 모여서 첫 임원회의를 개최했습니다. 희남회원들의 월례회 참여를 위한 동기부여 방안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논의 결과에 따라 희남 월례회에서 생활 나눔과 더불어 조촐한 생일파티도 개최할 예정입니다. 1월 월례회에서 터전위원과 예배위원 선임도 할 예정이니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희남신도회가 사랑의 공동체로 자리 잡아 향린교우들에게도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희남 회원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당부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 전서 4:8)

 

 

2. 성경 한 구절

 

“의인의 길은 동틀 때의 햇살 같아서, 대낮이 될 때까지 점점 더 빛나지만, 악인의 길은 캄캄하여, 넘어져도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잠언 4:18-19)

 

2012년 2월 8일 오전 8시 30분 경 제주 강정마을에 있던 저에게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국정원 관계자가 전화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국정원 직원입니다. 김종일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압수수색 때문에 만났으면 하는데 풍림리조트로 나와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하기에, "내가 거기까지 갈 수는 없고 나를 만나고 싶으면 강정동 코사마트 사거리 평화회관으로 오라"고 요구했습니다. 9시쯤 강정마을 평화회관에서 국정원 직원을 만났습니다. 국정원 직원은 팀장 포함 2명이었고, 당시 강정마을 해군기지공사현장에 파견된 서울경찰청 소속의 기동대 직원 1명을 입회인으로 대동시켰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기에 오전 9시부터 10시 10분까지 25쪽에 달하는 압수수색영장을 꼼꼼하게 읽어보았습니다. 저의 평통사 관련 활동이 북을 이롭게 하는 이적동조활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제주해군기지 반대도 북의 주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안기부 국정원으로까지 명칭을 바꿨지만 전혀 달라진 바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실랑이 끝에 제가 핸드폰 압수를 거부하자 국정원 직원은 몇 차례 상부와 통화하더니 그냥 돌아갔습니다. 여전히 음지에서 생활하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행태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배웠던 노래가운데 ‘달맞이’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제목의 노래가사가 기억납니다. “동무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입에다 물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노래가 교과서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북에서 ‘동무’라는 말을 사용하고 ‘통일’을 강조한다고 해서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서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분단모순이 어린아이들의 동심마저 빼앗아가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아직도 극복되지 않고 있는 분단 현실은 여전히 저에게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외람되게도 저는 그동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평판을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농담으로라도 “법대로 하자”는 말을 내뱉은 적도 없습니다. 저는 인간사의 모든 문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과 공감으로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강도만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그를 끝까지 돌보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향린교우들과 평통사 회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몇 안 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믿습니다.

 

 

3. 세상만사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한국 시각으로 2019년 1월 19일 새벽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연이어 만나, 2월말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2차 북미정상회담.jpg


청와대는 대변인을 통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합의를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는 2차 북미회담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확고히 다지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우리 정부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모든 역할을 다해 지난해 남북미 세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도록 관련국과 협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모든 협상에는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반영됩니다. 미국의 이해는 미국의 핵 유일패권이 무너질까봐, 북의 핵관련 기술이 반미국가에 이전될까봐 두려워 이를 막고자하는 것입니다. 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미국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군사적 제재와 경제적 봉쇄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은 유엔까지 동원하여 동맹국들에게 대북제재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북의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키고, 연중 내내 북의 김정은 정권 제거를 위한 다양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제대로 반영된 회의결과가 도출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미국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나서고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한편, 북은 핵시설 폐기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한반도 비핵화에 적극 나선다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전환적 국면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역사를 산다는 것은 벽을 문으로 알고 걷어차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8)

 

 

4. 옛 이야기

 

제가 태어난 곳은 영등포구 도림동입니다. 신도림 전철역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어린 시절 동네 가로등도 부족하여 해만 지면 골목길이 어두울 정도로 오래전부터 빈민지역으로 알려지고, 여름철 홍수대란을 겪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미군기지가 있었고 종종 주한미군의 의한 총기사건과 폭력사건이 벌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양색시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주한미군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주한미군과 양색시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노꼬(혼혈아를 지칭하는 일본말)를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보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8살 초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하루는 잠을 자고 있는데 새벽에 여성의 비명소리에 놀라 잠이 깼습니다. 저는 자다가 일어나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양색시가 만취되어 새벽에 들어온 주한미군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양색시의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고, 이를 지켜보던 저는 여자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과 공포에 발만 동동 구르며 분노를 삭여야만 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저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이 사건은 조그만 저희 동네에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다음 날 저는 동네 친구 4-5명과 방과 후 모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폭행한 주한미군에게 분노가 매우 큰 상태여서 친구들에게 “오늘 저녁 늦게 집에서 몽둥이 하나씩 가져와 골목길에 숨어 있다가 미군이 올 때 모두 합심해서 두들겨 패자”고 제안했습니다. 친구들의 반대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10시쯤 몽둥이를 들고 어두운 골목어귀에서 친구들을 기다렸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기다렸지만 친구들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실행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큰 일 난다며 못나가게 했다. 겁이 나고 무서워서 못나왔다. 그러다가 우리가 미군에게 맞아 죽으면 어떻게 해”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국 미군에게 이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지금도 주한미군은 대한민국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살아가고 있고, 하루에 평균 2건씩 범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형사 처벌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들 멋대로 3.8선을 그어 아직도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고, 한반도는 세계 최대의 화약고로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하게 주한미군에게 토지와 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카츄사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술 더 떠서 천문학적인 방위비 분담금마저 요구하며 저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모든 국가의 핵심적 자주권인 전시작전통제권마저 주한미군사령관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굴욕적인 한미동맹을 강요하며 이를 강제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주한미군에게 제가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