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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관계속에서 형성되는 선(善)

by phobbi posted Feb 14, 2025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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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2-13

2025. 02. 13.

 

맹자는 인간의 조건을 개인적 결단이나 선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란 오직 여민동락(與民同樂)”하는 데서 발현되고 구현되는 것이다. 맹자의 성선(性善)은 존재론적 규정(ontological definition)이 아니다. “()” 그 자체로서 고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만 발현되는 과정일 뿐이다. “()”이란 절대자의 명령으로 나에게 전달되는 양심의 소리가 아니다. 그런 소리는 없다! “()”이란 오직 타인과의 교섭 속에서 더불어 형성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선을 내가 판단할 수가 없다. 이것이 서양의 실존주의적 인간과 동방의 성리론적 인간의 차이다. 키엘케골의 단독자는 맹자에게, 그리고 공자에게는 허상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를 타인에게 개방하여 끊임없이 타인에게 배워야 한다. 물음과 배움, 그것이 곧 선()이다. 다시 말해서 문학(問學), 혹은 학문(學問)이 없는 선은 선이 아니다.

 

도올 김용옥 지음, <도올의 아침놀>(통나무, 2012. 10. 15.) 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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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는 남도 없고, 남 없는 나도 없다.

그렇다면,

신 없는 인간 없고, 인간 없는 신도 없는 것이다.

 

키엘케골의 신 앞에 단독자

철저한 자기반성적 인식을 강조한 상징적 표현일 뿐이다.

그 어떤 존재도 더불어 구성되어 가는 것이지,

이미 있던 것이 아니기에.

 

 

 

 

- 향린 목회 10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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