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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하느님을 만나려면

by phobbi posted Feb 20, 2025 Views 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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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2-20

2025. 02. 20.

 

하느님의 겸손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때로는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흐름을 뒤집습니다. 이 겸손과 관련해 우리는 모두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교만을 버리고 다른 이에게 다가가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설령 기도한다 해도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익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끊임없이 되새겨야 합니다.

 

한 노인이 일주일에 한 번만 식사하며 70주를 보냈다. 그 다음 그는 하느님께 성서 본문의 의미를 물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노인은 되뇌었다. ‘무엇을 더 해야 한단 말인가. 열심히 금식했지만, 아무것도 소용이 없구나. 다른 형제에게 가서 물어봐야겠다.’ 그가 형제에게 가려 집을 나오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했다. ‘네가 70주 동안 금식해도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못했으나, 이제 겸손한 마음으로 네 형제를 찾아가니, 너에게 본문의 의미를 알려주겠다.’ 천사는 본문의 의미를 알려주고 떠났다.”

 

로버타 본디 지음/황윤하 옮김, <주께서 사랑하시듯 사랑하라: 초기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비아, 2023. 4. 28.), 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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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이에게서 배울 수 없다면,

하느님에게서도 배울 수 없다.

 

다른 이에게 다가가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설령 기도한다 해도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익힐 수 없다.

 

서구 신학 전통에서 하느님은 오래도록 존재 그 자체(Being itself)로 이해되었고,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 그 자체이신 하느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과 사람을 포함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겸손히 자기를 비운다면 우리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열지 못하고 자기로만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 향린 목회 10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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