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추구는 나의 일생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인 집념이 아니라 나의 추구와 유리되지 않는 과제이다. 해석자는 관조자가 아니라 참여자이다. ~~~ 예수를 알겠다는 나의 집념을 어느 한 순간도 포기해본 일이 없다. 그것은 나를 찾는 일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오랜 연구의 결과 나는, 그러나 '그는 알 수 없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결국 결론을 얻지 못한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나는, 화살을 맞은 짐승처럼 상처를 안은 채 서구인들이 풀이한 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주는 매개인(媒介人)으로 자처하면서 밥을 먹고 살았다. 대안을 갖지 못한 나에게는 이러한 체념적인 생활밖에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군사정권의 폭거가 가중됨과 더불어 그러나 나에게는 커다란 전환기가 왔다. 그것은 역사를 위시한 모든 사물을 전혀 다르게 보는 눈이 제공되는 것이었다. '민중'을 만난 것이 바로 그 사건이다.
수난의 도상에서 민중과 만나면서 나는 오랫동안 거미줄같이 나를 휘감았던 서구적 사고의 틀에서 해방되어 주체적으로 공관서를 다시 읽게 되었다. 지금까지 못 만나던 예수를 나는 만나게 되었다.
안병무, <갈릴래아의 예수> (한길사, 1993. 1. 5.)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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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선생님의 이 짧은 자서전적 고백에서
우리는 그의 신앙 고백, 신학의 주제와 방법, 삶의 고민들을 읽어낼 수 있다.
예수를 찾는 일과 나를 찾는 일이 하나라는 것,
예수를 하나의 대상으로 놓고 하는 객관적 연구는 결국 예수를 만날 수 없게 한다는 것,
예수는 하나의 개인이 아니라 민중 속에서 드러나는 사건이라는 것,
그리고 민중 예수 사건은 수난에 도상에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존과 역사를 모두 고민하고,
고난 당하는 자들로부터의 시각을 지닌다는 점에서
안 선생님은 이미 유럽의 신학과 해방 신학을 흡수하고 계시다.
거기에 민중 사건을 말씀하심으로써
동아시아의 삶의 전통과 사유의 맥을 엮어내신다.
그의 신학은 그의 신앙과 실천과도 괴리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의 중심에는 나사렛 예수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과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예수를 찾고 묻고 따르는가?
안 선생님의 고민과 사유, 실천은 지금도 계속 되어야 한다.
- 향린 목회 1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