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8.
행위에 관한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 우주적 지평을 상실하면서 개인들이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삶의 영웅적 측면을 상실한 것이라고 기술하였다. 사람들은 목숨마저도 바칠 수 있을 정도의 보다 높은 목적의식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알렉시스 트 토크빌(A. Tocqueville)은 민주화된 시대에 사람들이 찾고 있는 “자질구레한 세속적 쾌락(petits et vulgaires plaisirs)”에 대해 언급하면서 때때로 이와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열정의 결핍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키르케고르(Sören Aabye Kierkeggard)도 “현대”를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니체(Friedrich W. Nietzsche)도 “최후의 인간들(letzte Menschen)”은 이런 몰락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 그들은 “가련한 안락(erbärmliches Behagen)” 이외에는 더 이상 삶에서 아무런 야망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목적 설정 상실은 마음의 시야가 좁아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시야를 상실해 버렸다. 토크빌에 따르면 민주적 평등을 통해 개인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자신을 자기 마음의 고독 속에 가두어두도록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주의의 어두운 면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의 초점 이동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단조로워지고 협소해진다. 우리의 삶은 갈수록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우리는 타인의 삶이나 사회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진다.
찰스 테일러 지음/송영배 옮김, <불안한 현대사회>(이학사, 2022. 7. 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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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자기를 찾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자기를 자기 안에서 찾으려는 것은
자기를 넘어서는 중요한 문제들이나 의미를 아예 지워버리고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한다.
“너 자신의 것을 행하라”, “너 자신의 실현을 추구하라”는 현대사회의 명령이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지려면 놀랍게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개인의 발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사랑도, 자식도, 민주적인 연대활도도 포기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참된 자기의 형성은 홀로의 사색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이란 의미 있는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정체성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여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정체성이란 역사적 사명, 자연의 요구, 동료 인간들과의 협력,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 인간을 초월하는 의미와 가치, 신적 소명이라는
다양한 과제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과 씨름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저버리고, 오직 자기 실현에만 골몰할 때,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 향린 목회 4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