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8.
마지막으로 <중용>이라는 텍스트의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문화적 역사적 괴리가 초래하는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왕조 시대에 유학이 고전에 접근하는 방식은 중국 지성사에 접근하는 근대의 학자들과 확실히 다르다. 예컨대 중국 명明나라(1368-1644) 시대에 평균적인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중용>을 음미하는 데 할당된 시간과 정력은 오늘날 대학의 중국 사상 분야에서의 박사 학위 지망생들을 능가한다. 전통적인 중국의 학생들은 8세라는 이른 시기에 <중용> 연구를 시작했던 듯 하다. 오랫동안 텍스트에 푹 잠겨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을 가진 뒤에 텍스트를 완전히 암기했다. 텍스트를 미리 억측하여 해석하지 않고,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을 통해 텍스트의 내재적 논리를 체득하려고 하였다. 간혹 생각 없는 기계적인 학습으로 오해되는 체계적인 암송이란 사실상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인지적이고 체험적인 영역을 완성하는 기나긴 분투적 과정을 통하여 전일적 전망(holistic vision)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었다.
뚜 웨이밍 지음/정용환 옮김, <뚜 웨이밍의 유학 강의>(청계, 1999.3.10.) 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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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홍수 속에서
당장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무엇인지 찾아 써먹고는 금방 잊어버리거나 내던지는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옛 사람들의 글 읽기는 너무나 의아하게 들리고 비이성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오랫동안 텍스트에 푹 잠겨서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완전히 암기하여
인격적 지식을 통해 전일적 전망을 획득하는"
신학과 신앙의 괴리를 줄이고,
신앙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삶이 가능하려면
바로 위와 같은 독서가 필요하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말하는 되새김(ruminatio)도 이와 같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 夕死, 可矣. <論語> 里仁 8.)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듣고 너무 좋아서 바로 죽어도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침에 도를 듣고 나서 하루종일 되새기면서 삶으로 녹여낸 후에
저녁이 되어서야 체현적 깨달음 속에서 죽어도 좋다고 한 것이다.
- 향린 목회 25일차